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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문명 - 지적 결집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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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문명 - 지적 결집체

[Nac] 2019. 12. 12. 19:22

 광기와 문명. 제목만으로 에너지가 느껴진다. 사실 먹고사는게 더 바쁘지 남 미친게 무슨 관심인가 싶기도 했는데, 우울증으로 자살한 설리의 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전SM 소속이던 신화의 김동완이 약만으로 해결하고 넘어가려는 방식을 꼬집었던게 인상적이었다. 광기는 흔히 생각하듯 실성한 사람만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우울증, 조증, 히스테리 등 정신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왜 광기라고 표현한 걸까.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광기와 문명, 사실 문명속의 광기 전체는 저자가 고대의 의학의 역사를 전개하면서 사용했던 표현을 빌려와 표현하고싶다. 지적 결집체. 저자는 미친게 아닐가 싶은데 역자의 말에서 보면 강박적으로 단어와 표현을 바꾸면서 씹는, 발음하는 맛을 고려하여 사용했다는 걸 보면 맞는거 같다.

 

 지적 결집체로써 흥미롭고 재밌는 지적 자극을 준다. 광기에 대한 이야기지만 광기를 인간이 원인도 대책도 찾을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로 치환해 인간을 이야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광기를 이야기하는 전개가, 책이 너무 길어서 대충보고 싶다가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데, 막상 요약하면 뭐 없는 거 같은 느낌은 들 수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던, 지금도 알 수 없는 광기를 처음 대면했을 때 인간은 신성을 부여했다. '신병' 신의 노여움으로 인한 병이거나 신과 관련된 무언가로 보았다.

 

 ㅡ 나 자신은 이 질병에 처음으로 신성한 성격을 부여한 사람들이 오늘날의 마법사, 정화사, 사기꾼, 돌팔이처럼 굉장한 신앙심과 우월한 지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본다. 어쩔 줄도 모르겠고 도움이 될 치료법도 없으니, 그들이 자신의 철저한 무지가 탄로되지 않도록 신적인 것의 뒤에 숨어서 안식처를 찾고 이 질환을 신성하다고 부른 것이다. 그들은 그럴듯한 줄거리를 덧붙였고,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하는 치료법을 확립했다. 정화와 주술을 사용했고, 목욕이나 병자에게 적당하지 않은 음식 여럿을 금지시켰다... 그들은 병이 신에게서 왔다는 이유로 이런 지시들을 준수하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환자가 회복된다면 신통하다는 명성은 차지할 테지만, 환자가 죽는다고 해도 확실한 핑계를 얼마든지 댈 수 있게 될 것이다.ㅡ <히포크라테스주의자>

 

 이 구절의 주석을 따라가보면 킥킥댈 웃긴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이제 와서 판단하자면, 히포크라테스주의자들도 그들이 치료한다고 주장한 이상 증세를 치유하는 데서는 똑같은 만큼 유능ㅡ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능ㅡ했다.

 

 이렇게 블랙코미디 같은 역사가 계속되어왔다. 광기는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는 언젠가 기회가되어 연이닿으면 읽어보고 싶을 정도의 급격, 과격한 전개로 이루어진다. 현대 스릴러 장르의 미국드라마를 보는듯했다. ㅡ강간과 난도질과 식인의 행진, 복수에 복수가 쌓여 지어지는 납골당 한복판에서 광기가 무대를 활보한다ㅡ 언젠가 이런 작품을 써보면 아직도 대중들의 유흥에 부합할까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현대의 초상을 발견한다. 당연한건지 변하지 않은건지.

 

 현대, 당장 지금의 시대에 있어서도 폭력적인 수단에 의한 계도가 갖는 유혹은 지속적이면서도 거대한 듯 하다. 공포와 자극으로 즉각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다. ㅡ공포의 감정이야 말로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첫번째 수단이자 흔히 유일한 수단이다. 그걸 잘 요리해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환상으로부터 생각을 끄집어 낸 다음 다시 현실로 데려오는 것이다. 비록 여기에는 아픔과 고통이 따를지언정ㅡ

 

 효과가 있다고 하는게 옳은 것일수 있을까. 인간을 짐승 취급하고 가축처럼 길들이고자하는 것인데 말이다. 블랙코미디는 계속된다. 자부심과 수치심 칭찬에 대한 사랑, 수치와 불명예에 대한 걱정과 같은 교육으로 도덕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상은 아이러니, 혹은 아이러니하지 않게 대감금의 시대의 시대를 불러왔다.

 

 광기-우울증-은 때론 사회적 우월함의 산물이자 증거물로 매독의 대척점에 서있기도 했다. 위대한 학자마저도 날품팔이와 상류층은 피부, 땀꾸멍, 근육, 신경이 다르고 정서, 행동, 태도도 마찬가지라고 인정했다. 인간은 우월하고자하고 아첨에 약하며 변명하고자 한다.

 

 ㅡ문명이 진보할 수록 생활은 더 복잡해졌고, 더 부자연스러워졌고, 더 빨리 진행되었고, 더 불확실해졌고, 더 긴장되었고, 더 불안해졌다.ㅡ

 

 한때는 광기를 가진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미래를 위한, 자손들을 위한 결단으로 불임수술로 시작해 살해해 나가기 시작한다. 돈도 없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과 추축군 양편에서 감호소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급격히 줄어 들었다. 그리고 종전후 역시 죽어갔고, 사회로 다시 풀려났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프로이트도 부정되고 약물의 시대에 이르렀다. 설리가 자살한 그 시대다. 광기는, 해결이 되었을까? 우리가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모른다.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기억에 남는건 우리 주위에 왜 이렇게 미친놈들이 많은가를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친절하게도 끝까지 저자는 이야기해준다.

 

 ㅡ약물은 치료제가 아니라 완화제다. 그마저도 아닌 경우도 흔하다. 중단하면 더 나쁜 증상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만성병은 만성적 수익을 낳는다... 광기, 그 의미를 잡으려는 우리의 시도들은 덧없이 사라졌어도 광기는 여전히 근본적인 수수께끼로, 이성의 치욕으로, 피할 수 없이 문명 자체의 본질적인 일부로 남아있다. 생물학과 사회적인 것의 뿌연 혼합물 속 어딘가에 광기의 뿌리들이 있다ㅡ

 

 

...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언젠가 다시금 떠오를 생각들이다. 그땐, 뿌연 그 어딘가에서 조금이나마 지푸라기를 잡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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