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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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 이제 우리는 헤어져야만 하나

[Nac] 2015. 10. 24. 22:22


이 글은 넥센 히어로즈와 J트러스트의 이슈를 바라보는 한 넥센팬의 투고로 작성된 회고입니다.


 

  이제 우리는 헤어져야만 하나


넥센 히어로즈의 한 팬으로서 이번 시즌은 아쉽지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강정호가 없는 빈자리는 컸지만, 잘 메꿨고 투수진은 여전히 얇았지만 분투했다고 말하겠다. 끝까지 못 올라갔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말하겠다. 


공룡과 반달곰이 피터지게 싸우던지 말던지 넥센과 나의 ‘우리의’ 야구는 끝났다. 이제 야구는 끝났고 기껏 관심 있는 분야라고는 조만간 시작될 이적시장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는것이다. 그런 부분이 짜증난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





J트러스트라는 회사와 메인 스폰서라. 벽촌 고척돔으로 옮기니 돈이 필요할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런식으로 뒤통수를 칠지는 몰랐다. 사실 이장석이란 인물이 난 놈은 난 놈이다. 장원삼, 황재균 팔릴 때 믿으면 안될놈이라고 다짐했건만 결국 또 거나하게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사실 선수들 판 이후로는 잘 하긴 했다만, 대부업체는 아니지 않나? ‘합법적인’ 저축은행이라 주장하겠지만 대부업으로 큰 놈이니 대부업자지. 교과서로 덮어봐야 박정희는 독재자인 것처럼





옛날 이야기를 좀 해볼까. 나는 현대 유니콘스 어린이 회원이었다. 삼청태현으로 이어지는 인천 야구계보에 ‘태평양’ 조금 ‘현대’ 많이를 담당했던 세대다.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은 도원 아레나 축구구장 자리에 원래는 도원구장이 있었다. 


태평양 시절은 잘 기억이 안난다. 어려서. 족발 먹었던 기억만 난다. 많이 졌던 것 같다. 아버지랑 아버지 친구들이 목청껏 응원하다 어느 순간 술만 줄창 드셨더랬다. 그럼 족발은 내꺼였지. “왜 내가 오기만 하면 지냐!-” 이 시대였던 것 같다. 난 족발이 너무 좋았다. 요즘엔 치킨이지.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난 태평양 팬은 아니다. 족발팬이었지


좀 크고 ‘국민’학교 입학하고 태평양 대신 현대가 들어왔다. 그때는 야구를 좀 봤지. 사촌동생이랑 TV로도 챙겨보고 친구들이랑도 야구 얘기 할 때 아버지는 좋아하셨던 것 같다. 대기업이 짱인 것이지. 우리집은 자연스럽게 현대유니콘스 팬이 됐다.


그러니까 어릴 때 도원구장이 있었다. 거기 앞에서 아버지랑 같이 신청했었다. 야구배트랑 글러브랑 모자랑 유광잠바였다. 빤딱빤딱했지. 그리고 학용품 약간- 그때는 집이 좀 살았던 것 같다. 우리 세대라면 다 알겠지 좀 있으면 IMF가 오는걸 그러니까 예측이 안된다는 것이 짜증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면 유소년 시기의 행복했던 추억은 현대와 함께였던 거다. 그래서 더 애틋한 기억일지도


현대는 좋은 팀이었다. 강했고 왠만하면 이겼더랬다. 아버지에게 미스터 인천은 김경기였지만 난 이숭용이었지. 세대차이가 그런거다. 요즘 애들은 누구일라나.






박재홍도 좋았고 김수경이 있었다 닥터 k 김수경. 그를 제일 좋아했다. 그가 인천고 출신이란 말을 듣고 나도 인천고로 가야겠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결국은 다른 고등학교로 갔지만 그 정도로 좋아했다. 그가 망가져갈 때 정말 안타까웠다. 



나와 내 친구들은 하교길에 떡볶이를 먹으면서. 파워레인저 딱지를 사면서 항상 현대얘기를 했다. 나는 박재홍이 제일 잘한다 했고 아직도 기억나는 그놈은 박경완이 제일 잘한다 했다. 포수로써 그정도면 박재홍은 뛰어넘는거라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어렸을 적 내 친구는 야구 볼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IMF가 왔고 용돈이 줄어서 서러웠지만 얼마 안 있어 더 서러우라고 현대가 수원으로 가버렸다. 그 자리에는 왠 이상한 도마뱀이 들어왔지. 충격 엄청 먹었고 그 당시 내 왼손의 흑염룡이 날뛸 시기라 인생 좆같다라고 크큭 거렸다. 내 사춘기가 격렬해서 우리 어머니가 고생했다면 거기에는 현대의 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야구 안봤더랬다.


2002년에 월드컵이 있었고 4강 갔었지. 야구의 시대는 가고 축구의 시대가 왔다. 그때 유입된 축구팬이 나였다. 박지성보다야 고종수가 최고지 니네가 뭐 아냐 했던 아재들과 키보드를 들고 싸웠더랬다. 그것이 세대차이다. 요즘도 그럴테지 허허.





대학까지도 축구열기는 계속 됐고 선배들이랑 위닝이나 하며 낄낄댔었다. 야구 안봤다-

군대가서 야구 봤다. 선임이 어디 야구팀 응원하냐 해서 야구 안본다 했다. 맞았다-

그 새끼는 개새끼였다. 인천 출신이라니까 현대 아냐며 거기 망했다고 올해 해체한다더라 현대 죽기전에 한번 보라고 보여줬다. 그래도 나름 유년시절의 추억이 부관참시 당했다. 이숭용이 아직 있었다. 그리고 해체됐다.


08년 히어로즈가 창단됐다. 그때는 우리담배가 스폰서였다. 담배가 스폰서라니 국민건강이 어쩌고- 그래도 내 선에는 받아들일만 했다. 상경 달았고(전경출신이다) 리모컨 잡았고 그때 야구 봤다. 우리 히어로즈. 아직 이숭용이 있었다.


전역하고 대학가고 낄낄 대고 다시 야구의 시대가 왔다. 히어로즈는 약했지만 그래도 응원했다. 언더독 정신이 보였기 때문에 역전 드라마는 사나이의 피를 끓게 하는법- 나 아니면 이런 좆망팀 누가 응원하겠냐 하는 부심도 조금 있었더랬다.






장원삼도 팔고 황재균도 팔고 이현승도 팔고 개장수도 팔고 다 팔고 팀의 미래를 팔았었다. 그래도 응원했다. 이장석 개.. 이숭용은 그때도 있었다. 


시간은 가고 어린이 회원이 군대까지 다녀왔으니 이숭용도 많이 버틴거였다. 그가 은퇴를 하고 SK로 넘어갈까 했다. 그때 SK는 최강이었다. 왕조소리를 들었으니까 잘 나가는 팀을 보니 베알이 꼴렸다. 그래서 계속 넥센팀 했다. 그때도 약체였다.


약체가 강해지고 아득바득 올라가서 포스트시즌가고 삼성 앞에서 대가리를 들이밀었을 때 정말 기뻤다. 강정호도 메이져 가고 올해도 잘했다. 이제는 강팀이지. 굳이 내가 응원 안해도 될 것이다. 








J 트러스트가 메인 스폰서라 가는것만은 아닐꺼다. 어쩌면 헤어질 순간은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헤어지는거지. 흔히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헤어진 연인과는 다시 잘될 수가 없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현대-히어로즈는 둘 다겠지. 첫 팀. 헤어졌다 다시 만난 팀. 우리는 잘 될 수가 없었다. 연고지 이전- 팀 해체- 선수 팔아먹기- 이번에 대부업체까지 버티기에는 내 멘탈이 무너진 상태였고 이제 우리는 여기까지다.

 

어렸을 때부터 응원해온 나도 그리고 다시 아득바득 올라온 너도 우리 모두 수고했다. 서로간의 의리는 다했다. 이제는 헤어질때지 다만, 내가 하고 싶은말은


야구는 야구만이 아닐 것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소년에게 야구팀이라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야구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쫒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야구는 꿈이 있어야 한다. 소년에게 꿈이 필요하듯이 


그러니까 대부업체는 아니라는 이야기지. 사업을 하고 싶으면 물건을 팔면 된다. 야구는 단순히 물건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테지. 지금 어떤 야구소년의 흑염룡이 날뛰어서 그 소년의 부모님이 힘들다면 이장석 당신에게도 분명히 그 지분이 있을 것이다. 예전의 현대처럼 말이지.



그러니까 이제 나는 어디를 응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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