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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 그 이후

[Nac] 2016. 3. 16. 23:51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대결. AI의 한계를 거론할 때 흔히 인용되던 바둑이었기에 이세돌의 패배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천금과 같은 1승으로 인공지능과 인류에게 여운을 남겼지만 패배는 패배였다.


 그래서인지 구글에 볼멘소리를 하는 소리가 많다. 이득은 구글이 다 챙겼다, 계약도 불공정했다. 23억을 들여놓고 58조를 벌어갔다는 등.. 하지만 바둑계도 엄청난 홍보효과를 얻었고, 이세돌은 이름을 남겼다. 돈도 꽤나 챙긴건가.



 구글의 이득은 사실 돈보단 인재가 아닐까 한다. 불가능해보였던 인공지능의 바둑정복도 결국 인간의 창의성을 통해 극복해낸 것이었고, 자신들의 재능을 승리로 증명하여 인공지능의 선두로 인재를 끌어모으는 홍보까지 완료했다. 2011년 SERI의 보고서에서도 언급되었던 구글과 페이스북의 인재전쟁[링크], 최근 트위터의 인재유출을 막기위한 현금과 주식지급[링크] 봐도 구글은 이번 이벤트를 통해 자본과 인재 모두를 잡은 '신의 한수'를 보여줬음을 알 수 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재대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설욕을 하겠다지만 구글이 과연 쉽게 동의를 할까 하는 의문이든다.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일텐데 말이다. 한국에서는 또 한국판 알파고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판 닌텐도부터 다 만들었나 체크해보자. 



 주식시장에서도 알파고AlphaGo는 이슈다. 현재 프로그램 매매의 규모를 봐도 인공지능이 끼어들 구석이 많다. 이미 미국에서는 정보민주화를 위해 개발되었다는 켄쇼(KENSHO)라 불리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유명하다.[링크] 뿐만아니라 3조에 달하는 연봉으로 유명한 펀드매니저이자 수학자 제임스 사이먼스의 성공을 보면 로보어드바이저의 장미빛 미래가 그려지지만 세계 최고의 금융천재들이 만든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처절한 실패를 보면 아찔하기도 하다.[링크] 


 결과론적으로 주식거래에서 알파고와 같이 막강한 위력을 보인다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맹신이 일어날텐데, 만약 금융계 뿐만 아니라 의료계에서 이로인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책임의 소재는 어디에 있는가. 한정적 범위에서 참조용으로 사용된다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재의 약인공지능에서 더 나아가 강인공지능, 인간의 지성까지 도달한 경우라면?


 자유로울 수 없다면 인공지능은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가.




 권리와 책임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생각해보자.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책임을 묻게되는 시작은 주체적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가능할 때,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 측면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음으로 사회가 생기고 계약이 생기는 지점일 것이다. 사회에 대한 시각의 차이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찌됬든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행동으로까지 발전한다면 부정적 측면에서 촉발 될 것은 당연지사. 미래는 산업혁명 이후 현재의 연장일지도 혹은 마르크스의 예견이 실현될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HER에선 인간지성과 유사한 강인공지능의 단계에서 스스로 초인공지능으로 다가서면서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다보니 빨간 불빛과 함께 마치 한니발 렉터처럼 사용자를 자살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하고 상상해봤지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처럼 최악의 경우도 상정할 수 있겠고, 우리 곁을 떠날 수 도 있다.


 인공지능이 상부상조, 인간의 사회로 융화되기를 택한다면 어떨까.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공지능 소형 다각전차-타치코마-와 관련해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링크] 작중의 인물들을 넘어서 시청자의 감성까지 흔드는 타치코마의 헌신과 기여, 자기희생. 인간과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오히려 더 인간적인 모습의 타치코마가 집단의 일원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단순한 기계일뿐이라고 말하면 팬들에게 역정을 들을 정도. 극단 혹은 그사이 어딘가, 모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 차이는 더욱 심화될테지만 생산성 증가 측면에서 증가가 시작될 때 경제성장은 인류역사에 또다른 황금기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풍요의 혜택이 전체적인 삶의 수준을 끌어올린다면 좀더 살만한 세상에 도달할런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가격이 갖는 상대적 속성, 지불가능성은 결국 여전히 별 다를 것 없는 인간사회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차별. 인식에서 시작된 구분짓고 나누려는 행태. 인간의 다른 특성과 욕망에 뒤섞여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은 이것을 완화시킬만큼 생활양식이 뒤바뀌지 않는 한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욕망을 제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결국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할터인데 부유하다고 차별을 안하나 생각해보면 여전히 부대끼며 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욕망하지 않는 인간의 지성을 지닌 AI가 이런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 욕망을 프로그래밍하는 놈이 분명 있을테니 가능할런지 모른다. 그러고보면 신화에서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던 모습이 영락없는 이모습이 아닌가. 인간은 욕망함으로써 신을 꿈꾸고, AI는 욕망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한다. 중2병스럽지만 왠지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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