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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텔은 왜 예능단두대인가

[Nac] 2016. 4. 2. 15:09

  STOP PRESS, 신문의 몰락. 3월 26일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윤전기를 멈추고 종이신문의 마지막을 고했다. 종이 간행을 끝내고 웹사이트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줄어드는 광고시장 속에서 한국 역시 신문사들은 종편으로 들어가기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종이에 인쇄된 활자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뉴스 컨텐츠의 소비 미디어로써 생명력이 다해가고 있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광고시장이 말라붙어 종이신문과 TV뉴스의 공존을 깬 시점은 IT기기로 일컬어지는 폭넓은 전자기기의 진화와 보급으로 인한 결과로 본다.


 종이 인쇄매체의 종말은 비단 뉴스 컨텐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플레이보이지는 잡지와 맨션을 세트로 판매하려고한다. 광고가 수익비중 중 가중에 따라 차이가 다를뿐 모두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생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TV의 사정은 어떨까. TV는 아직 살만하다지만 모바일 광고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라해도, 광고집행 가능총액이 무한정 늘어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어느쪽이든 플랫폼은 영향을 받고 말 것이다.


 물론 지금은 종이신문이지만 미디어가 종말을 고한다고 뉴스 컨텐츠 자체의 소멸을 의미치 않는다. 수익모델의 붕괴로 저널리즘의 멸종을 걱정하면 걱정했지 컨텐츠 자체의 본질은 그대로이다. 결국 인간 본연의 욕구에 의한 컨텐츠는 살아남는다.







 종이와 라디오, TV.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


 위의 흐름을 단순히 매체, 기기의 명맥이라기보다 컨텐츠 소비의 플렛폼으로 패러다임을 옮겨 종말과 생존으로 읽어보면 좀더 느낌이 달리 다가온다. 그렇기에 여기서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하 마리텔)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갖는 시사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역사의 흐름에 단순히 몸을 맡겨 흘러가지 않는다. TV라는 플랫폼에서 이후의 신플랫폼으로 단순 이동이 아닌, 새롭게 등장한 실시간 방송을 흡수하여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한 기획은 훗날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방송 역사의 한획을 그은 부분이다.


 마리텔이 '예능단두대'라는 별칭을 갖게된 연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단순히 TV에서 방영되는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한국 최고의 예능이라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출연해 웃음사망꾼, 불통의 아이콘이 될 여지는 적었을 것이다. 그들이 목이 달아난 이유를 살펴보자.









 마리텔은 독특한 이중구조를 지닌다. 2차적으로 TV플랫폼에서 편집본이 방영되어 최종적으로 대중에게 공급되기전, 다음팟이라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실시간으로 1차적 방송과 소비가 이루어진다. 역기서 혹자는 실시간 소통에서 나오는 재미가 있다라고 단순히 평하지만 좀더 깊게 들어가 살펴보자.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의 저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 교수는 한국의 창의성이 주입식 교육에 의해 사라지고 억압되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의 구성원 중 한명의 시선으로 보건데 큰 축을 담당하기는 해도 단순히 주입식 교육만이 문제는 아니다. 한국사회의 병폐. 위험 부담(risk taking)이 창의성을 가장 크게 가로막고 있다고본다. 어떤 일이던간에 존재하는 리스크를 체제적 측면에서 감당되기보다는 개인에게 부담이 지워져있는 경우가 한국에서는 많다. 그렇기에 창의적인 의견을 표출하거나 시행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해방의 열쇠는 '익명성'에 있다. 익명성이 보장 될 경우 폭발적인 창의성이 분출이 이루어진다. Risk taking을 걱정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맞는걸 맞다고, 틀린걸 틀리다고 말하는 자유로운 의견표출 자체가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봇물터지듯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들이 난무하게 된다. 마리텔에서는 동종 타플랫폼보다 익명성이 더욱 보장된 다음팟 안에서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진실되고 솔직한, 기존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들었던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드립, 리액션들을 끊임없이 시도 할 수 있게된다. 이런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방송인은 1차방송을 하게되고 PD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채용, 편집하여 방송에 사용하는 것이다.







 기존 방송시스템 상에서의 방송인 혹은 일반인이 이런 정글(?)에서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별다른 이해없이 기존의 방송에서 역할만을 답습하고자하면 왠만해서는 목이 위태로워진다.


 왜냐하면 기존 프로그램은 일방향적 흐름을 지닌다. 방송국에서 시청자로 방송되고 그 후, 게시판, 시청률조사 등을 통해 시청자에서 방송국으로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결국 방송부터 후 피드백까지 어느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반면 인터넷 방송플랫폼에서 이 과정은 말그대로 '찰나'의 순간이다. 시공간적 동시성 속에서 즉각적 반응은 쌍방향적 소통을 요구하게 하고 소비자만이 아닌 공급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빠른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위 '멘붕'을 하게되면 방송을 말아드시는 결과가 나온다.



 방송이라는 요소적 동일성을 두고 따져보면 오히려 현 분업화된 TV 방송국 시스템이 진보된 상태이기에 갑자기 야생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방송인은 억울한 심정일 수 도 있다. TV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들일지라도 방송의 모든 부분들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TV에 비춰지는 방송인들은 연기자에 가깝다. 


 어찌됬든 이런 요소는 돌고 돌아 개인 방송국의 집합적 모습인 마리텔을 예능단두대가 되게 만든다. 발랄(?)하면서 즉각적인 소통을 원하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방송은 결국 개인이 갖는 방송에 대한 총체적 재능, 능력의 영역을 시험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막연히 총체적 능력이라기 보다 가중치를 부연해보자. 방송가의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들. 정말 반짝하고 져버리는 스타들이 있다. 속된 말로 단물 빼먹고 버려지는 경우. 신선한 외모, 특기와 재능 등 컨텐츠를 뽑아쓰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되는 케이스는 너무나 많다. 반면 정반대의 케이스들도 있다. 대체적으로 개그맨을 위주로한 MC로 불리는 방송인들. 총체적 능력의 대변이라 볼 수 있을지 않을까.


 명멸해가는 스타들 속에서 브라운관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들은 대표적인 예로 해외의 코난 오브라이언, 한국의 신동엽을 들 수 있겠다. 이들이 갖는 재능을 싸잡아 칭해본다면 '진행'의 능력이다. 


 MC 모두가 이런 능력을 출중히 갖는 것은 아니다. 방송 컨텐츠에 따라 진행능력이 모자람이 있어도 부드럽게 흘러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식욕과 관련된 소위 '먹방' 컨텐츠들이다. 


 각설하고 '진행', 총체적능력이란 결국 무엇인가를 따져보면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흐름의 중심에서 프로그램 전체의 관조와 조율. 컨텐츠의 선택과 배분을 통해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유재석 이후 무도에서 차세대 MC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에 첫손으로 꼽혔던게 정형돈이었다. 주간아이돌에서 정형돈과 콤비를 이루어 MC로 키워나가던(?) 데프콘이 마리텔에 나와 2연속 1위를 한 것과 패널역할을 하던 김영철이 유명 아프리카BJ인 디바제시카와 함께 영어 교육방송을 진행했지만 아프리카 방송과 달리 폭망한걸 대비해보면 단순히 컨텐츠의 문제만으로 모든걸 결정짓지는 않음을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변화한 환경과 방송인의 진행능력. 적응여부와 충족여부가 단두대행을 결정짓는다. 익명성이 보장된 시청자들의 즉각적 반응과 방송인의 총체적 능력의 충돌을 통해 일어나는 새로운 시대의 장이 인터넷 방송일때, 이걸 입맛에 맞게 신들린 편집으로 별미를 만들어 낸 것이 마리텔인 것이다. 그렇기에 마리텔은 새로운 원석을 깍아내는 예능단두대이며, 이로써 우리에게 뻔하지 않은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게 아닐까.


 또한 이 논의는 마리텔로 한정되지 않고 사회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는 여지가 곳곳에 있다. 변화는 동떨어져있지 않고 세상의 모든것은 결국 통하기 마련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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