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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라이즈(High Rise, 2015) 리뷰 - 인간과 진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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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라이즈(High Rise, 2015) 리뷰 - 인간과 진보

[Nac] 2016. 5. 24. 09:12

하이 라이즈(High Rise, 2015) 리뷰


인간은 영원을 꿈꾼다. 나 역시 영원을 그려볼 때가 있다. 진시황 마냥 개인의 불로불사를 추구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원이라는 단어가 일상과 동떨어진 느낌이라면 이렇게 바꿔보자. 


'지속가능한'


갑자기 익숙한 느낌..이 든다. 인간은 그럼 어떻게 지속 가능을 꿈꿨던걸까. 국가를 생각해보자.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국가를 건설 했을 때, 그들이 갖는 시스템은 대부분 왕권이라는 강력한 축을 통해 유지되었다. 그리고 정점인 왕을 필두로 지배와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어진 시스템은 인류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지속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현시대를 돌아보면 왕권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을 갖는 국가는 멸종에 가깝다. 어째서 이토록 변화한걸까. 무엇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왕을, 시스템을 끌어내린 것일까.



불공평?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은 공평한게 아니야'. 일반적인 경우 그렇기는 하다. 여기서 결과와 기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배층이라고 차별을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피지배층이라고 차별을 안하지도 않는다. 보통의 경우 불공평과 차별은 대다수에게 납득되고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임계점에 다다른 불공평은 어떤 계기로 폭동이나 혁명의 이름으로 폭발한다. 왕정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던 시기의 프랑스 대혁명. 커다란 방점을 찍은 혁명이지만 프랑스 대혁명만이 혁명은 아니다. 지배, 피지배를 막론하고 수많은 작고 큰 혁명들이 이어져 왔고 그 점들을 이은 것이 우리의 역사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차별과 불평등, 폭동 혹은 혁명의 모습에 그리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지 않는다. 중의적이고 다양한 상징들을 사용하지만 전기가 나가고 수영장을 일시적으로 쓰지 못하게 되는 차별과 분노하는 도덕적이지 못한 주동자. 체제가 전복되었지만 권위를 내세우는 상류층.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현상을 보여줄 뿐이며 영화는 좀더 차갑게, 큰틀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영화가, 감독이 보는 인간의 삶이란 성(sex)과 편집증(paranoia)의 범벅이다.

섹스는 우리가 모두 널리 알듯 성교의 의미 그것이고, 편집증 증세에 대해 위키의 내용을 가져와 보면


○ 타인의 동기나 의견을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등 전반적으로 불신감과 의심을 갖고 있다.

○ 이성일 경우, 상대방을 병적으로 질투하고 시기하며 성적 순결성을 의심한다. 또한, 상대방이 여성일 경우, 아무런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 정서적인 면에서 매우 냉담하고, 권력과 지위에 집착한다.
○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경멸하는 태도로 본다.
○ 대인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불안과 갈등을 유발시킨다.
○ 상대방의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상대방의 동기나 의도를 믿지 않아 장기간 정당하지 못한 의심을 한다.
○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자만심(독불장군 형태)이 강해 자기 자신의 생각하는 위주로 일을 진행하기 바라며,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에 대해 매우 질투를 하고, 다른 사람이 소소하게 잘못했거나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곧잘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 상대방을 어떻게든 익명성을 이용해 떠보거나, 비꼬는 말 등을 이용해 약올리는 걸 좋아한다.
○ 자신이 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남이 하는 행위처럼 얘기하며 상대방에게 불쾌한 행동을 했음에도 본인의 행동을 마치 다른 사람에게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정서의 폭이 좁기 때문에 유머 감각이 결여되어 있고, 농담도 할 줄도 모르고, 우연한 농담도 심각한 인신공격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무시를 받아도 마음에 커다란 적개심을 품는데, 한번 품은 적대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 자신이 행한 행위에 대해서 반성이나 잘못을 뉘우치긴커녕 오히려 상대방한테 잘못을 떠넘긴다.
○ 대인관계에서 정당한 이유, 확실한 근거도 없이 의심하고 질투하는 정도가 심각하게 나타난다.
○ 별거 아닌 일에 쉽게 흥분을 하고, 늘 다른 사람과 싸울 태세를 하며, 늘 긴장되어 있고, 무정한 면이 있으며 자만심을 보인다.

상대방이 잘못한 일도 없는 괜히 흥분을 하면서 강한 열등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 이미 지나간 일을 언급하면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 상대방을 비꼬면서 억지 인신공격을 사용하여, 어떻게든 상대방을 진흙탕싸움에 참가하도록 유도한다.
○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음에도 그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준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 떠든다. (뒤끝이 심하다)
○ 한번 물은 먹잇감에 대해선 절대 놓치지 않고, 계속 우려먹는다.
○ 상대방의 의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 몇 년 전의 일을 가지고 계속 들먹인다.

○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주고 감정 상하게 만든 사람은 끝까지 싫어하게 된다.
○ 상대방의 의견에 없는 말을 덧붙여 억지를 부리는 게 특징이다.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몰아 부치며 뻔뻔스럽게 행동한다.
인신공격을 즐겨하는 스타일이다.

○ 이 모든 증세를 가족들에게 주로 보이니 이를 감당하는 가족들의 고통이 상당하고 특히 부모중 한 사람이 이 병을 가졌을 경우 그 아동은 위의 모든 증상을 고대로 감당하느라 끊임없는 심각한 아동학대(육체적 폭력 및 정신적 학대)에 희생된다.


항목들을 보다보면 의외로 자신이 때론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광경임이 보인다. 한 개인이라는 인간이 아니라 국가 또는 인류를 축약해놓고 본다면 삶의 본질이 섹스와 편집증이라는 말은 좀더 설득력을 갖는다. 어찌됬건 영화는 이런 가정을 둔다. 완전함을 추구하며 설계된 시스템이지만 그자체도 불완전하며 인간 자체가 이러할진데, 행운이든 불행이든 우연한 계기로 임계점에 다다른 시스템의 전복은 반복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영화는 좀더 주인공에게, 우리에게 앵글을 가져다 댄다.


때묻지 않은 시작, 아름다운 본연의 가치와 시스템에 적응하고 매몰되가는 개인. 중의적이고 은유적인 상징으로 화면을 가득채우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방 곳곳을 넘어서 온몸에 얼굴에 발린 페인트는 시스템에 적응한 인간, 우리를 의미한다. "생활에 심리적 중압감도 없고 능숙할 정도로 무심하고, 번영하고 있는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도 일시적인것으로 치부하거나 그냥 이해하고 넘기는 우리의 모습. 


중의적 표현에는 페인트만이 아니다. 자신을 감싸는 지위, 계층, 돈, 형식 그 무엇을 뭉뚱그려 표현한 넥타이. 영화내내 넥타이를 주목해봐도 흥미롭다. 넥타이를 풀고 맨몸을 보려고 할때의 거부와 상대의 말에 충격을 받는 이유. 주인공은 그 충격을 시작으로 변화한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이 상대로 부터의 언어, 소통을 통해 영향을 주고 받는다.


소통을 통한 영향은 결국 시스템과의 소통도 포함한다. 물론 영화는 시스템이 전복되더라도 인류는 어떤 영웅에 의해서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에 의해 실패를 바탕으로 조금씩 진보하고 지속가능함을 드러낸다. 유약한 어떤 의미의 소통이라기 보다 실수하더라도 서로 영향을 주며 나아갈 수 있게하는 치열한 그것. 인간 본연의,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자신다운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찰나이자 영원을 사는 인간의 답일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p.s. 파티party의 중의적 의미. 사교적 모임이자 단체이자 정당으로 쓰임을 볼때 준비하던 말과 강아지는 누군가가 아끼고 사랑하던 그 무엇을 의미하기에 그것을 먹고 제공하는 행위는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이 역시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일까. 그리고 영화에서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도 다뤄지고 있는데 현재 민감한 소재가 될 수 있어 언급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라디오 소리의 국가 자본주의는 소련의 레닌이 처음으로 시행했던 사회주의적 경제제도 중 하나이다. 소련은 물론 실패했고 경제에 있어서 시장과 국가 두축에서 오가는 균형은 현재 시장중심의 신자유주의 시대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미 찾아온 미래이자 또다른 하이 라이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하이 라이즈는 어떤 상황일까 그리고 나는? 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묘해져 온다. 한국의 문화는 자신의 의견표출이 갖는 리스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상징의 해석만으로도 재미있고, 히들스턴의 수트빨도 좋지만 참으로 대중적이지는 않은..

설국열차와는 정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하이라이즈. 계속 생각이 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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