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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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 리뷰

의심과 믿음 - 곡성 리뷰

[Nac] 2016. 7. 18. 08:51

곡성 리뷰



 현실과 영화는 다른 점도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보는 장면 장면들은 의도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은 모두에 가깝게 감독의 생각이 들어간 의도적인 배치를 통해 만들어진다. 영화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현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다.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와 배경, 사물의 배치에도 의도는 들어간다. 문자와 글들은 이미 그 자체가 의미의 집약이기에 사용에 있어서도 세심하고도 의도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텍스트의 중요도는 흘려버리기엔 너무 다.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의 시작이기도 반전의 비밀인 경우도 때론 결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다. '의심'으로부터 생각은 시작하며 '믿음'이라는 끝으로 매듭지어진다. 또한 믿을 수 없음으로 매듭은 풀어지며 믿을 수 없음은 곧 의심이다. 이렇게 생각은 나아간다. 영화는 누가복음 인용, 예수 부활의 복음으로 시작한다. 분명 생명이 죽음에서 부활함은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현상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놀라며 예수가 귀신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리고 예수는 살과 뼈가 있음을 통해 사람들의 의심이 틀렸음을 믿게한다.


 발칙(?)하게도 영화 역시 마지막에 죽었던 일본인이 부활한다. 그리고 악마의 형상으로 성흔이 새겨진 손을 내밀며 예수의 대사를 읍조린다. 그렇다면 부활한 예수가 악마였던 걸까라는 의심으로 연결된다. 이 의심이 틀린 것이라면 어떻게 증명하고 믿게 할 것인가. 예수의 증명은 결국 귀신이라는 의심을 부정하는 증거일 뿐이다. 





 "그놈은 죽는 놈이 아니여"라는 대사와 함께 상징적 요소를 강조하여 종교적 분쟁의 소지를 줄여본다면 예수가 악마라기보다 등장하는 악마는 내러티브 속의 일본인과 함께 자신의 믿음이 틀렸다는 생각의 상징체를 겸한다할 수도 있다. 너무 뜬금없다라고 생각되는가? 이렇게 한번 봐보자. 틀릴 수도 있다라는 생각. 의심을 악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가?


 사람은 분명 생각하는 존재다.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의 시작이 사악한 것일 수 있을까. 이성적인 의심은 때론 신을 외면하게 하고 이성으로서 비판, 증명이 허용되지 않는 교리인 도그마(Dogma)가 종교에는 존재한다. Dogma가 그리스 어원 Dokein, 생각하다에서 유래된 것이 또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입장에선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악적인 존재일런지 모른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믿을 수 없는 일에 의심치 않는 믿음을 일본인은 살과 뼈로 증명한 예수의 부활과 같은 증거를 빗대 비꼬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인데 무엇은 믿고, 무엇은 믿지 않는가. 악마의 모습이, 외면이 선과 악을 결정하는가? 겉을 통해 내려진 판단은 무조건적인 진실인가?


 분명 겉을 보고 의심치 않고 판단한 결과가 맞을 수도 있다. 겉이 악마니까 속도 악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악마였다. 다행이다. 만약 다행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는걸까. 믿음을 주지 못하는 모습, 혹은 오해를 했을뿐,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믿지 않는 경우는 불행했다라는 말로 끝낼 수 있을까. 의심치 않는 믿음을 전제로 행동했지만 결과가 믿음과 상관없이 운으로 정해진다면 그것은 자신이 판단이 틀렸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의심으로 믿음의 매듭을 풀고 다시 각자의 과정을 통해 수정된 믿음으로 매듭지어져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보면 생각의 나아감 자체를 막는 것이 오히려 악마적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악마적인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의심과 믿음의 과정. 생각이 자유롭더라도 모든 것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의심으로 시작된 잘못된 믿음은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는 행동을 낳는다. 영화의 재밌고 흥미로운 내러티브 속에 숨겨져 진행되기에 의식하며 되새기며 보자. 어떻게 의심하며 무엇을 믿는가. 무엇을 의심하며 어떻게 믿게 되는가. 


 경찰관인 주인공의 대사 " 우덜식 방식이랑께. 딸이 아파 뒤지겠는데 영장받을 시간이 어디 있당가. 정식으로 수사하고 영장청구하고 법원이 발부하고 못기다린당께. 그라고 워차피 증거도 없는 것이여. 그 씨벌놈이 뭔짓을 혔는지 뭘로다가 증명하는가? " 만이 아니다. 스크린 밖의 우리를 돌아보자. 누가 좋은놈인지 나쁜놈인지부터 다양한 부분을 영화 내내 의심하고 판단한다. 그런 우리 각각의 의심과 믿음을 돌이켜 보자. 영화를 끝까지 봤기 때문에 좋은편인지 나쁜편인지 확실한 답을 의심치 않고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현실에서도 판단가능하다고 보는가. 현실에서 비현실적인 요소를 증명하는 증거가 있다면 의심치 않고 믿겠는가? 


 단순히 이성적 판단만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아집과 독선은 이성을 악마로 만든다. 또한 사람이 무슨 논리회로만으로 작동하는 기계는 분명 아니기에, 이성과 감성으로 생각하는 존재가 사람이기에 비이성적인 의심과 믿음을 가질 수 있음을.. 자신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생각하며 우리의 의심과 믿음이 상대의 입장에서도 옳은가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앞선 생각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일런지 모른다. 하지만 수녀님께서 하느님이 존재함을 증거하는 것이라며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나는 사진을 보여주고, 하느님을 믿으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바 곡성이 좀더 진지하게 다가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너무 멋진 연기와 내러티브에 정신이 빠져버렸다. 곽도원의 연기를 보며 간혹 들리는 잘생겨서 연기를 못한다고 느껴지는 것이다라는 말들이 얼마나 허망한 소리인지 절절히 느낀 한편이었다. 잘생겨서 연기를 못하게 느껴지는게 아니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아무나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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