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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리뷰 - 한국의 맛

[Nac] 2016. 9. 26. 18:36

 재미있을까. 재밌게 보았다. 재밌다.


 한국형 무엇무엇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을 때, 속된 말로 한글패치가 완료되면 창렬하다라는 경우가 일상에 산재한다. 자조섞인 용어가 되어버린 한국형. 하지만 영화 '부산행'에 붙는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는 냉소가 아닌 미묘하면서 짭짜름한 즐거운 미소가 지어진다.


 단편적인 부분에서 한국형이라기보다는 영화의 온갖부분에서 한국의 스타일을 찾아볼 수 있다. 좀비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열차라는 공간으로 한정시키고 분장과 좀비연기로 CG를 절약하며 찍어낸 영상을 보고있으니 싸고.. 효율적으로 잘찍었구나라는 감탄이 들었다. 이게 발로 걷어차는데 진짜 사람이라 쎄게는 못차고 효과음이 퍽퍽나는게 재밌었는데 이런 부분들도 그냥 좋았다. 원체 좀 쌈마이한 느낌을 좋아해서였던걸까. 즐겁게봤다.



 부산행은 마치 잘 비벼진 비빔밥같았다. 비빔밥에는 재료들도 중요하지만 하나 둘 뭔가 엉성해도 고추장양념이 맛깔나면 맛있게 먹는 것 아니겠는가. 소희의 연기가 어색해도 아니, 심은경과 역할을 바꿨으면 어땟을까하는 생각이 들어도 뜨겁게 고동치며 질주하는 스토리텔링 속에서 버무려져 그래 이런 것도 한국의 맛이지! 라는 묘한 긍정속에서 수긍하고 넘어간다. 마동석이라는 장아찌도 참 맛있고 말이다.


 비빔밥의 양념과 재료들을 다 걷어놓고 보면 부산행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저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깔려있다. 영화 '미스트'와 비슷한 면이 많다. 이것저것 덜어내고 좀비를 가져다 넣고 한국형으로 쓱쓱 비벼낸게 부산행이 아닐까 싶은 모양이지만 대중성의 측면에서는 부산행에 점수를 더 줄 수 있겠다.





 공포라는 근원적 감정에 맞딱뜨린 인간군상의 행동들. 감독이 추구하는 선에 대한 이야기. 자기희생을 동반한 징악과 권선의 행동들. 특히 자기희생적 징악의 부분은 기가막힌 한국형 카타르시스가 아닌가 싶은데.. 사실 이런 부분은 좀 위험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한국형의 테두리안에서 이해하도록 하자. 허허.


 공포에 대해 좀더 이야기 해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에서 일본을 다녀왔던 조선통신사의 두 사신이 전혀 상반된 보고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의 황윤길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의 김성일. 후에 류성룡이 김성일에게 왜 그런 보고를 했는가에 대해 묻자 민심이 흉흉해지고 조정이 혼란해지는 것을 어느정도 저지하기 위해 그랬다는 이야기이다. 




 멀리가지 않아도 이승만 대통령의 6.27 특별방송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도 그렇다면, 미래도 그런 법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헬조선스러운 결론이지만 연습과 훈련이라는게 괜히 있는게 아니다.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는데.. 연습과 훈련을 하는 데에도 많은 난관이 있지만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옳은 일을 함에 동반하는 위험성이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최강의 부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있던 건장한 병사가 휴가를 다녀오면서 손도끼와 나이프를 가져와 한밤중에 일어나 불침번을 살해하고 다른 희생자를 찾아서 온갖 난동을 부리는데 당직사관을 포함한 병사들이 생활관에서 문을 잠그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다른건물로 이동한 병사는 커다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난동을 부렸고, 결국은 당직사령의 권총에 의해 쓰러졌다.


 오랜 시간동안 난동을 부렸음에도 누구하나 조치를 취하지 못한데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있었겠지만 그 이후 조치에 대한 책임, 공포도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또는 내부고발자의 최후처럼 말이다. 옳은 일을 함에 있어서의 위험성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역시 에드워드 스노든이 프리즘 사건을 폭로하고 신변의 위협을 받는 것을 보면 어디에나 위험성은 있는 것이지만, 적어도 왜 나서서 그런짓을 했냐는 등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웃기고 슬픈건 나이가 들어가니 배신자의 딱지를 왜 붙이는 지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부산행의 카타르시스가 내게 더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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